원죄
엄마는 엄마의 시대에 영원히 갇혀버린 존재다
최근에 완다와거상, 블러드본을 해보기 위해 중고 ps5를 샀다. 아버지가 할머니댁에 잠깐 가셔서 거실이 비어있는 주말 틈에, 지식 함양을 위한 눈물을 마시는 새 독서가 끝나고 큰 TV에서 게임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방에서 게임기를 꺼내 TV에 연결하려 했다. 엄마는 내 모습을 보고 주저없이 뾰족하고 기다란 창들을 꺼내들어 나를 향해 사정없이 찔러댔다.
- 난 솔직히 니가 하려는거 잘 모르겠다(이해하려 든 적 없음)
- 그거할거면 진작에 그런 과를 가지 뭣하러 쓸데없는 과를 갔냐(이 얘기하면 또 거슬러 올라가서 재수 왜 안했냐, 문과 왜갔냐, 고등학교 왜 글로갔냐 같은 개소리가 확정타로 연계됨)
- 여태까지 뭐하면서 허송세월했냐(대학교 휴학 한 번 안하고 졸업도 전에 취직해서 2년 경력 있음)
- 언제까지 부모 밑에서 살거냐(직전까지 독립했음)
- 나가서 돈이라도 벌던가 뭐라도 해라(이미 직장생활 2년 했음)
- 니 사주에 초반에 고생한다더라(어쩌라고)
그래. 내가 잘못했다. 직장생활과 자취를 중단하고 본가로 다시 들어올 때 아버지가 중재해주셨던 저녁 식탁에서의 회담은 그 때뿐이란 것을 잊어버린 죄였다. 가장 오랜 시간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했지만 그들은 나를 모른다. 내가 얘기해줘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언어,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나를 재단한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주는 사람은 이 세계에 아무도 없다. 심지어 가끔씩 이 육신의 주인인 나조차도 나를 혐오한다. 과연 나는 어디에 기댈 수 있을까? 이미 체념한지는 오래지만 오랜만에 이런 공격이 들어오니 다시금 그 때 느꼈던 감정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당신은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대류하는 느낌을. 아마 내가 여자였거나 지금보다 연약한 정신을 가졌더라면 울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속으로 우는 것이리라.
자꾸 까먹는다. 나의 세계가 발아하려는 것을 중지시키려는, 뒷꿈치로 쿵쿵 걸어대는 그 발로 내 가능성을 즈려밟아 짓이기려는 굳은살 박힌 발의 존재라는 것을.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이미 하등 의미가 없다는걸 수천번의 박치기를 통해 체득했음에도 생물학적 관계 때문에 주기적으로 잊고 바보같이 반복한다는 것을. 어떻게든 저 먹구름을 이해하고 설득하려하는, 이 정도면 대화가 통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오만함을 의식적으로 억제해야하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다.
나는 자유를 원한다.
나는 창작을 박해하는 집안에서 창작을 시도하는 원죄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