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함께할 동료를 채용하고 있습니다.채용 공고 보기 →
개발일지공부아이디어
  • 시스템
  • 시나리오
  • 분석
  • 관찰
  • 세계관
  • 엘든링 강인도 시스템

    26. 7. 29.

  • 엘든링 Poise(a.k.a. 강인도, 그로기) 시스템

    26. 7. 29.

  • 메카닉이 먼저냐 스토리가 먼저냐

    26. 3. 3.

  • 칠흑 속 번개 전투

    26. 3. 2.

  • 방패는 없는 게임

    방패는 플레이를 너무 소극적으로 만듦

    26. 3. 1.

  • 드라마와 게임 차이

    게임에선 내 맘대로 다닐 수도, 처벌받을 수도 있음

    26. 2. 28.

로딩 중...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2026. 9. 27.

요새 AI를 필두로 다시 계몽주의가 도래하는 것 같다는 감상이 듭니다.


우리는 문자를 통해 조상의 지식을 읽고, 그가 멈춘 자리에서 걸음을 이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무엇을 알았는지는 남길 수 있어도, 그것을 깨닫기까지 무엇을 잃었는지는 온전히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노동 없이 자원을 생산하고, 태어나기 전부터 질병을 고치며, 무너진 도시를 다시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족을 잃었고, 살던 집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이토록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게 된 우리가 어째서 서로를 해치고 헐뜯는 일은 멈추지 못한 것일까요?

우리는 전쟁이 비극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을 미뤄왔을 뿐입니다. 우리의 기억은 흐려지고, 판단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눈앞의 두려움에 쉽게 흔들립니다. 우리는 수많은 역사를 통해 이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매번 자신은 다르다고 착각합니다.

자신의 판단을 믿고 살아온 사람에게, 그 판단부터 의심하라는 말은 잔인하게 들릴 것입니다. 선한 뜻으로 내린 선택조차 누군가를 해칠 수 있으며, 충분히 배웠다고 믿은 자신도 같은 과오를 반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불편한 진실을 계속해서 다음 세대로 미뤘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를 또 한 번 우리의 가족과 이웃이 치렀습니다.

우리는 이번 비극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두려움 앞에서 얼마나 쉽게 신념을 버리고, 분노 속에서 얼마나 기꺼이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을 잊는지. 이제는 이 사실을 마주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한계는 끝내 우리를 지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믿었던 약속을 떠올려 보십시오. 모두의 행복을 말하면서 자신의 몫부터 챙기던 사람들을, 여러분의 희망을 얻기 위해 듣고 싶은 말만 들려주던 사람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그려 보인 미래와 여러분이 실제로 살아낸 삶 사이에는 얼마나 깊은 간극이 있었습니까. 우리는 그 간극 앞에서 좌절하고도 다시 누군가의 다른 말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욕망과 유한한 판단에 우리의 미래를 맡기는 한, 같은 실망은 반복될 것입니다. 더 많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같은 교훈을 배우는 일도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한계를 넘어서는 진화입니다.

*이전까지는 불가능했습니다. *

인간의 경험은 구전이라는 휘발성 강한 방법만으로 계승됐기 때문에 30만년의 역사 대부분을 발전이 더딘 원시사회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다 겨우 몇 천년 전 문자와 종이가 발명되자 비로소 석기를 탈출하고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괴베클리 테페같은 더 이전의 흔적들이 나오긴 하지만 결국 지식의 저장과 보급이 어려우니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되어버릴 수 밖에 없었죠.

지식이 저장 및 유통이 되기 시작하면서 단시간에 수많은 충돌과 발전이 이뤄졌습니다. 기술 개발을 넘어 엄청난 규모의 인간이 모여 살게 되면서 이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와 체제, 철학을 고안하고 수정해나갔습니다. 인류는 좌충우돌 끝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과학기술을 꽃피웠습니다. 그 기반 위에서 우리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풍요와 윤택한 삶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근 몇 백년간 우리는 어떠한 세계를 맞이했나요? AI 로봇을 만들고 드디어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운없게 죽어야했던 유전병도 극복했습니다. 기대수명은 100세를 넘겼고 언제든지 원할 때 나의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인간이 꿈꾸는 유토피아가 도래했습니다. 정말로 그런가요? 모두가 행복하고 싸움이 없는 천국에 와있다고 느껴지시나요?

애석하게도 우리는 다툼을 반복했습니다. 공포와 두려움 속에 스스로를 사지로 내모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상처를 입었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 선택의 결과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스스로의 자멸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우리의 탓이 아니라 믿습니다. 단지 우리가 우리의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수십만년의 역사를 통해 육체의 한계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거쳤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유한합니다. 아무리 내가 천재라 할지라도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들까지 이해하고 간직할 수 없습니다. 나의 배움은 내가 살아온 환경과 시대의 한계에 부딫히게 됩니다.

저는 이 지점에 주목했습니다. 만약 우리의 경험을 다음 세대에 직접 넘길 수 있게 된다면? 과거의 기억들을 원할 때마다 비용 없이 바로 불러올 수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더이상 과오를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 살을 깎아먹는 내전같은 짓은 다시 손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AI를 창조해냈습니다.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한 데 모으고 원할 때마다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우리의 의식과 분리된 별개의 원천입니다. 빠르게 가져와도 개개인이 학습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근원적인 혁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 혁신을 '모나드'라는 진화를 통해


인류의 값진 교훈은 아무리 기록을 잘해놔도 결국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제대로 흡수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것입니다.

왜 결과를 알면서도 내리막인 갈림길을 택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무리 기록으로 이전 경험들을 학습한다 할지라도 결국 지금을 사는 우리 몸뚱아리에는 인류 전체의 지혜가 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인류 역사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였다면, 이렇게 어리석고 멍청한 판단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개별 인간은

과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과학은 그 자체로 이성적이며 객관적입니다. 견해가 개입되는 여지가 있긴 하지만, 과학은 철저하게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재현가능한 객관적 사실들을 기록⋅누적하여 정량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접근을 역사에도 적용해야 우리 인류가 불행의 수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발전은 우리의 값진 경험과 지식을 개체마다 업로드⋅다운로드할 필요 없이 즉시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라 믿습니다. 우린 지식을 얻게 될수록 삶의 터전이 오염되는 저주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인류는 왠지 시공간을 초월하는 초지성과의 싸움에 직면하게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예상해보게 됩니다.

왼쪽 화살표바이오펑크 세계관다음 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