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PE〉

July 26, 2026 (3d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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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주의

한국 사람들한테서 굉장한 호불호를 이끌어낸 영화 HOPE를 봤다.

영화를 보게된 계기

일단 시작하기 전에 개인적인 감상을 남기자면 나에게는 굉장한 재미를 가져다준 영화. 2시간 반이란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난 이후에 2시간 반이 지나갔는지도 느끼기 어려웠을 정도로 흡입력이 있었다.

이 영화의 존재를 알게된건 다들 그랬겠지만 소셜 미디어에 나홍진 감독의 이 영화가 칸 영화제에 출품했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CG 작업이 미완성인 상태로 출품했는데 좋은 평가를 받았다느니 하는 풍문을 듣고, 또 얼마 있다 예고편 영상에서 조인성이 울창한 숲에서 백마탄 마초 아저씨에게 외계인에 물리기 직전 가까스로 구출되는 강렬한 숏을 보면서 과연 한국산 SF, 크리처물이 또 개쳐망할 것인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리고 영화를 보기 직전엔 선발대들의 극명하게 갈리는 호⋅악평을 듣고 영화관에 들어갔다. 대사 중 절반이 '씨발'이라더라, 스토리가 ㅈ박았다, 액션은 역대급이다, 이딴걸 10년동안 만들었냐 등의 원색적인 평들이었다. 이런 평가들이었기 때문에 나도 사람인지라 부푼 기대보다는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됐고, 실제로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이 상태는 유지됐다.

호好: 명확한 의도와 그 날카로움

이 영화의 핵심은 외계인의 인간 추격전이다. 그리고 〈HOPE〉는 이 본질에만 집중한다. 이 집중력이 너무나도 강력하고 선명하기 때문에 다른 곁가지에 불필요한 힘을 들이지 않고 본질에 곁가지들이 데롱데롱 매달린채 휘둘린다.

액션의 퀄리티는 정말 뛰어나다. 장면 장면이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도 뚜렷하게 기억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다소 핍진성이 떨어지는 설정의 공백을 무시할 순 없지만 역시나 '한국 영화가 때깔은 기가막히게 뽑는다'는 공식은 부정당하지 않았으며 더 공고하게 쌓아올려졌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액션 부분만큼은 높이 평가한다. 나홍진 감독의 의도가 매우 명확했고, 그 의도가 관객에게 좋든 싫든 명확하게 전달되었으며, 그 의도의 날카로움이 정말 섬세하고 뾰족했다. 그가 다른 영화감독들과의 GV 영상에서 직접 언급했듯 '이 영화는 오락 영화의 극점'이라는 평이 정확하다.

혹酷: 감독의 게으름

이 영화는 한 마디로 핍진성이 결여돼있다. 다시 말하자면 감독이 게을렀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영화가 진행되는 '호포항'이라는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영화를 관통하는 일관된 체계 없이 나열돼있다. 그래서 관람평 중에 이 영화는 영화 안에서 3부작으로 나뉜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초반부, 중반부, 후반부가 끊어져있다는 느낌이 든다.

일관성이 없다는 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몰입할 기회를 박탈해버리는 치명적 결함이다. 좋은 작품은 작품을 감상하는 도중에도 전달의 방식에 따라 직⋅간접적으로 내가 지금 본게 아까 쟤랑 연관이 있다는 직감을 하게 만든다. 그런데 나는 영화를 보면서 초반부의 '바미기르' 외형과 '설사 할아버지'의 상상 장면 이후에 나타난 '고성기' 무리와 대적하는 다른 외형의 외계인들을 보면서 혼란을 겪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외계인의 자리는 찐득한 점액 비린내 이미지의 '바미기르'가 자리하다 중반부터 퇴장하고 고귀한 이미지의 외계인들이 자리했다. 누구는 초록색이고 누구는 하늘색, 누구는 빨간색이다. 설정 사이의 공백이 너무 넓고 연결지을 수 있는 단서들이 너무 희미하거나 없었다.

이 밖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 인간보다 몇 배 큰 생물체가 우주선까지 타고 왔으면서 왜 원시적인 전투방식 밖에 사용하지 않는가?
  • '양배'는 '칼리'를 어떻게 저런 우월한 외계인들 사이에서 사살해 몰래 갖고 올 수 있었고 외계인들은 어떻게 몰랐는가?
  • 우주선 지하에 갇혀있던 '크르시니'는 대체 왜 보여줬는가?
  • 극후반부 외계인들의 짧은 대화는 왜 해석을 보여줬는가?
  • '바미기르'는 왜 호포항을 들쑤셨는가?
  • 호포항의 주민들은 초토화가 되었거나 진행 중인 한복판에서도 농담이나 따먹지 급박하지 않다

좋게 말하면 이 영화는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관객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자발적으로 창발하게 한다. 나는 이런 소위 '프롬뇌'같은 놀이가 개인적으로 매우 반갑다. 게이머 또는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이야기의 퍼즐 조각들을 잇고 추측하는 정규 콘텐츠 외의 '놀이'를 즐기는 문화를 좋아한다. 나홍진 감독이 진짜로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단군의 말마따나 작품이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는 감독의 것이 아니라 관객들의 것이 된다.

하지만 이 해석도 탄탄한 설정과 단서 위에 비어있는 공간들을 채우는 놀이인 것이지 대륙과 대륙 사이만큼 떨어져있는 바다를 관객들로 하여금 매우게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더군다나 나홍진 감독이 영화 외적으로 이른바 '오피셜'하게 이야기하고 다니는 영화의 설정, 부연설명들은 더욱이 이 영화가 영화 자체만으로는 서있을 수 없는 부실한 모래성임을 증명하고 있다.

결론

창작자를 꿈꾸는 사람으로써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 대한 여러 비평들을 흡수하면서 더더욱 창작의 어려움을 느꼈다. 일단 재미만 있으면 장땡이지 않는가? 라는 속편한 회피부터 기술 외적인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의미있게 채우려면 고민하고 공부해야할 것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창작도 결국엔 공부가 필요하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작품의 장르를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해야만 한다. 이해하려면 그 장르의 대표작들은 최소한 다 읽어봐야한다. 그리고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영상매체가 아닌 책을 읽어야 한다. 글자만이 내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여백을 제공해준다. 영상매체들은 모두 글을 읽은 누군가의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