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June 17, 2026 (13d ago)

요즘 부트캠프 출근길에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고 있다. 아직 독후감을 쓰지 못했지만 이전에 〈데미안〉을 읽고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아 이 책까지 찾아 읽게 됐는데, 데미안과 비슷한 깊은 깊이의 감명을 주는 책임은 확실한 것 같다.

절반 밖에 읽지 않았지만 독후감을 쓰는 이유는 지금 나의 감상을 남기지 않으면 너무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혈기왕성한 20대의 황혼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 지금의 내가 느끼는 이 소용돌이치는 감정이 나중에 분명히 어떤 형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백하자면 지난 한 두달 사이에 출근길에 종종 마주치는 사람이 마음에 들어왔음을 시인하고 싶었다. 이제 부트캠프가 딱 한 달 남은 시점에서 이 여자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지는 얼마 안된 것 같다. 대략 한 두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처음 마주친 순간부터 뭔가 다르다고 직감했던 것 같다. 진부한 짝사랑 레퍼토리를 떠나 과학적으로도 이미 남자는 첫인상으로 매력적인지 아닌지 판단하는데 0.1초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연구된 바가 있다(궤도에게 과학적으로 배워보는 연애의 기술 (궤도 2부) - 첫눈에 반하는 게 과학적으로 가능할까?). 그 이후부터 내가 원하지 않아도 자꾸 이 사람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같은 칸에 탔는지 확인하고 싶어 다음역 모니터를 살펴보는 척 하면서 주위를 훑기도 하고, 최대한 의식하지 않는 척 하면서 어떻게든 의식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번 주부터 이 여자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나를 의식했나? 내가 부담스러웠나? 아마 전혀 의식하지 못했을리는 없을 것이다. 여자들은 눈치가 빠르니까. 그럼 나를 의식해서 다른 칸으로 옮겼나? 내가 너무 들떠서 평소보다 5분 앞선 열차를 타긴 했네. 그래도 이틀 동안 안보이는건 왜지? 휴가를 낸건가? 직장인이 아니라 학생인가? 대학생이면 내 동생이 시험기간이 끝난걸로 봤을 때 갑자기 안보이는게 설명이 된다. 근데 이 쪽 방향에 대학교가 없을탠데 뭐지?

겉으로 티내고 다니진 않았지만 항상 아침에 마주치던 월요일과 화요일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내가 머릿속으로 했던 실제 생각들이다. 그렇게 평소 평정을 잘 유지하던 나였는데, 말 한 번 섞어보지 못한 이름도 모르는 여자 하나 때문에 갑자기 감정이 요동치는 경험을 겪고 있었다. 너무 괴로웠다. 마치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투약하지 못해 금단 증상에 몸부림치는 것처럼, 갑자기 사라진 그녀의 자취를 찾기 위해 내 뇌는 발버둥쳤다.

재밌게도 지금 읽고 있는 〈싯다르타〉의 주인공 싯다르타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싯다르타는 매우 잘생기고, 고위 계층 집안의 자제로 소설 초반부터 모든 이들에게 촉망받는 젊은이였다. 이 젊은이는 남들은 모르는 착한 아이 증후군에 시달렸고, 이 증후군에 시달리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 과감하게 집을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사문(수도승)들을 따라 수행을 시작하게 된다. 3년 동안 금식, 명상을 하며 수련하지만 싯다르타는 동행하는 사문들도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 행위 자체에 잠식되어 그 안에서 고이는 존재들임을 간파하고 무리에서 떠난다. 이후 친구 고빈다와 함께 풍문 속 깨달음을 얻은 자인 고타마를 찾게 되고, 싯다르타는 고타마에게서 경외심을 느끼며 고타마와 같은 사람이 되려면 그의 아래에서 수련하는 것으로는 절대 그 경지에 이를 수 없겠다는 확신을 얻고 고타마와의 짦은 대담 후 다시 떠나기로 다짐한다.

그렇게 떠난 싯다르타는 예전엔 경멸했던 주위의 자연을 조금씩 이해하며 사랑하기 시작한다. 한 여인을 만나 유혹에 빠질 뻔 하지만 단념하고 정신차리기도 하고, 뱃사공을 만나 '당신과의 우정을 배삯으로 치겠다'는 멋진 말도 듣는다. 그 이후 도착한 마을에서 카말라라는 미인을 만나게 되고, 싯다르타는 이 미모에 홀려 목욕과 이발도 하며 그녀에게 잘보이기 위해 안하던 짓을 한다. 카말라는 싯다르타와의 대화에서 그의 총명함에 매력을 느끼고, 싯다르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도승인 사람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카말라에게 사랑을 배우고 싶다는 돌직구를 날린다. 카말라는 싯다르타에게 무엇을 줄 수 있냐 묻고 싯다르타는 사유, 기다림, 금식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카말라는 이런 싯다르타에게 그런 것도 좋지만 자신은 물질적인게 필요하다며 자신이 아는 거상 카마스바미에게 상업을 배워 물질을 가져오라고 요구한다. 싯다르타는 성욕에 눈이 멀어 카말라가 말한대로 거상의 아래에 들어가 상업을 배우면서도 거상과 맞먹으려고 기싸움을 한다.

싯다르타는 태생이 최상위 카스트 계급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똑똑했고 금방 부와 명예를 얻게 된다. 그리고 카말라와 흥청망청 사랑을 나누며 타락한 삶을 영위하게 되고, 자신이 지금껏 얻었던 가르침들과 멀어지며 욕망적인 삶에 잡아먹힌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까지의 싯다르타를 읽었을 때 나는 위안을 받게 됐다. 싯다르타도 결국 한낱 욕구에 충실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고, 욕구에 충실하는 순간 역시 인간다운 순간 중에 하나이며 자랑스러워할 건 아니지만 또 터부시할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고 현자가 되기 위해 수행을 떠난 사람도 아주 격렬하게 욕구에 잡아먹이는 순간이 있다.

어제 저녁엔 또 TV에서 '법륜로드 : 스님과 손님' 예능을 잠깐 봤다. 법륜스님이 출연진과 제작진 가운데 앉아 즉문즉답하는 시간을 봤는데, 그 때 나와 같은 나이의 카메라 감독이 나와 막내 생활이 왜이렇게 힘드냐는 질문을 했다. 법륜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1년차고 선배가 10년차인데 왜 실수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느냐, 10년차인 선배는 10년동안 실수해오면서 그 경지에 다다른 것인데 너는 어찌하여 1년만에 그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똑같은 위치에 오르려고 하느냐. 그것은 날로먹으려고 하는 심보다. 70 먹은 자신에게 어떻게 그렇게 즉문즉답을 잘할 수 있느냐고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 물은 10대가 있었다. 자신은 간단하게 오랜 기간동안 고생하거나 짧은 시간 안에 엄청 많이 고생하면 된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학생에게 짧고 굵게 고생할래 라고 물어보니 싫다고 손사래쳤다 했다.

결국에 싯다르타도 법륜스님같은 고타마를 만나면서 치기어린 짧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직 소설을 다 읽진 않았지만 결국 싯다르타는 카말라와의 시간 이후에도 더 오래 고생을 하며 고타마의 나이대가 돼서야 깨달음을 얻게 되리라.

이런 생각들을 하고 나니 지금 나에게 찾아온 이 번뇌를 게임으로 풀어내보고 싶었다. 기존의 멀티 플레이는 나의 세계에 상대방이 침입해 나를 공격하든(암령) 나를 도와주든(백령)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형태로 구현돼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기보다 나는 내 필드를 항유하고 있는데 저 멀리 다른 플레이어가 또 다른 필드를 향유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아주 제한적인 멀티플레이가 떠올랐다. 마치 지하철에서 이름모를 누군가와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말하자면 굉장히 간접적이며 피상적인 관계를 구현해보고 싶다. 미야자키 히데타카가 자신이 눈보라 속 도로 위에서 갇혔을 때 다른 이름 모를 운전자가 도와주고 말없이 사라진 경험을 게임에 녹여낸 것처럼, 나는 좀 더 개인적이고 파편화됐으며 희미한 관계를 구현해보고 싶다. 상대의 존재만을 알 수 있고, 무조건 이어지는게 아니라 현실처럼 그저 그렇게 흘러 영영 다신 만날 수 없는 상황을.

아마도 그녀는 대학생인 것 같다. 항상 마주쳤던 금요일 그녀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더욱 확실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린 더이상 마주칠 수 없게 된다. 우울해진다. 하지만 어쩔 수 있는가. 있는 그대로 느낄 수 밖에 없다. 정말 사무치게 보고 싶어서 나중에 다시 아침 9호선에 몸을 싣고 그녀를 찾게 될지라도 지금 당장은 이 감정을 품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