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상반기 회고

July 14, 2026 (Today)

인스타그램과 쪽지

siddhartha 서평에서 언급했던 사람. 웃기게도 저렇게 애절하게 써놓고 바로 다음날인가에 다시 마주쳤다. 그러고 그녀는 6월 마지막날에 마주치고 지금까지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쯤되니 나의 모습에 넌덜머리가 난다. 그렇게 뭐 비운의 주인공마냥 글 써놓고 정작 다시 나타났을 땐 써놓은 쪽지 주지도 못하고 미루다가 결국 사라지고 후회하나. 덕분에 삭제한 줄 알았던 인스타 계정을 부활시켜서 혹시나 찾을 수 있을까 그 사람 계정을 찾아다녔다. 진짜 정신병 걸린 것 같았다. 그렇게 느끼면서도 멈추지 못했던게 스스로도 웃겼음.

다시 활성화한 인스타 계정도 사실 지금의 '쪽지'같은 부산물이다. 작년에도 지금처럼 상대방은 알지도 못하는데 나혼자 끙끙 앓다가 만든 '나 여기있어요' 였음. 적어놓고 보니 진짜 ㅄ같네 ㅋㅋㅋ. 이젠 별로 혐오감도 안든다 그냥 이게 나다. 나라고 별 수 있겠냐 다 똑같은 인간이고 멋진 척하지만 정작 용기는 못내는 머저리일 뿐인거지.

은수저

부트캠프 최종 발표에서 개박살이 나고 삽시간에 멘탈이 부서져 집에 돌아오자마자 마침 아부지와의 오붓한 단둘이 식사 위 비비큐 치킨과 맥주와 위스키를 마셨다. 아부지는 당신께서 겪어온 가족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셨다.

당황하긴 했다. 할아버지 얘기를 하시면 그렇게 차분하고 유들유들한 사람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는 모습을 관찰했던건 처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번엔 할아버지 얘기를 하시면서 북받쳐 우셨다. 지금 내가 이렇게 여자 얘기나 하고 있고 결과도 없이 게임 만들겠다고 설치고 있는 배부른 소리가 처절하게 밑바닥부터 쌓아올린 아부지의 고생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었다.

아부지는 내가 뭐가 됐든 하고 싶은걸 마음껏 하길 바라신다. 참 복받은 인생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식으로 얘기하자면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3루까진 아니어도 2루에서 시작한 놈이 아닐까. 그 2루도 순전히 엄마와 아빠의 처절한 노력으로 도달한 성과다. 그래서 존나 애매하다. 뭐 딱히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금수저도 아니고, 또 현실에 치이는 흙수저도 아니고, 하고 싶은건 힘들지 않게 할 수 있는 은수저 정도일까? 분수에 맞는 눈높이를 가지지 못했다. 존나 개같은 저주에 걸린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내 상황을 최대한 누리는 것이다.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이 상황을 100% 활용하고 누리는게 부모님한테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 본성이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으면 안되는 기질로 태어날 때부터 정해졌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나도 걍 아부지처럼 공기업 들어가서 정년 보장 받고 주식하지. 근데 그게 안된다. 상상만으로도 죽어버리고 싶다. 아부지는 이 저주를 가난의 대물림이라 칭했다.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지구-42

내 20대의 끝이 보인다. 인생에 다시는 오지 않을 20대라는 터널의 끝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슬프다. 두렵다. 겁난다. 무섭다. 도망치고 싶다. 내가 꿈꿨던 20대 후반의 삶은 이렇지 않았는데. 반반한 직장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결혼을 준비한다는 미래의 나는 지구-1610에 있나보다. 내 지구의 거미는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나보다. 나의 그웬 스테이시는 어느 차원의 지구에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