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運命)
관습적으로 회고를 1월 1일 자정에 올릴까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러기엔 작년은 회고에 남길 뚜렷한 덩어리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회고를 쓰지 않고 있었는데, 참 운명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정말 운좋게도 갑작스럽게 다음 달부터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것이 작년에 그렇게 실패와 좌절을 연달아 겪을 때엔 난생 처음 깊은 우울에 빠지기도 했는데,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보게 되니 힘들었던 순간 정도로 웃어넘기게 되는 것 같아 한편으로 인간은 참 웃기는 존재라 생각이 드는 순간입니다.
취업에 성공한 것은 제 고등학교 동창(쉽게 말해 ㅂㄹ친구)이자 개발자인 친구 덕분이었습니다. 아침 운동 중에 개발자 친구들 단톡방에 '노드js 공부해보면 어떻겠냐' 생각없이 물어봤더니 난데없이 친구가 개발자 한 분을 소개시켜주었고 난생 처음 판교로 커피챗하러 갈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짧은 시간동안 좋은 분위기에서 대화를 마쳤고 이어서 공식적인 첫 면접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오퍼를 받아 다음달부터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얼어붙은 채용시장에서 딱 제가 바라던 환경을 갖춘 스타트업에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밖에 설명하지 못할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전달할 때마다 지인들은 '다 너가 준비돼있어서 기회를 잡을 수 있던 것이다'고 칭찬을 해주십니다. 감사하고, 저도 너무 불필요할 정도로 겸손해지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예상치 못한 시기에 친구 덕을 크게 봐버려서 별안간 그간의 제 삶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던 것 같아요.
인복(人福)
사실 굉장히 얼떨떨합니다. 무릇 운명이란 전혀 예상치 못한 때에 찾아온다 하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라 좋으면서도 잘 실감나지 않는 것 같아요.
참 많은 생각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친구가 아니었으면 가망없이 올해도 계속 손가락 빨고 있었을 걸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합니다.
작년 초에 독서 습관을 길러보고자 서점에서 여러 책들을 구매했는데요. 그 중에 그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역행자』란 책을 가장 먼저 읽었습니다(ps. 작년 통틀어 총 4권을 읽었습니다. 올해는 개발자답게 8권을 읽어보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책을 읽는 습관을 들여라'는 것이 이 책의 메세지지만, 책의 후반 '기버 이론'를 언급한 부분이 저에겐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리지널스』의 저자이자 『기브 앤 테이크』의 저자이기도 한 작가 애덤 그랜트의 기버 이론(giver theory)은 꽤나 유명한 멘탈 모델입니다. 저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을만큼 유명한 이론인데, 세상에는 Giver(받는 것보단 주는 것에 익숙한 자)와 Taker(관계에서 자기 이익만 챙기는 자) 그리고 Matcher(딱 받은 만큼만 돌려주는 자) 3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세 부류 인간을 조사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냈습니다.
- Taker는 성공은 빠르나 그만큼 빨리 망한다.
- Matcher는 Taker의 성공을 견제한다. 그렇기에 Taker와 Matcher 모두 최고의 성과를 내진 못한다.
- 저조한 성과를 내는 사람과 최고의 성과를 내는 사람 모두 Giver였다.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인간으로서 조금만 생각해보면 납득이 갑니다. 당장 나만해도 내가 상대방에게 도움을 줬을 때 입 싹 닫는 파렴치보단, 나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는 사람에게 나도 더 웃어줄 수 있는데, 과연 나는 그런 사람인가? 그리고 상대방은 별거 아닌 작은 도움이었어도 내 감사한 마음을 표시해 상대방이 감동한다면, 앞으로 좋은 기회가 생겼을 때 나부터 생각나지 않을까?
합리적인 주장이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아직 성공한 위치는 아니지만, 지금부터 기버와 같이 행동한다면 나에게 손해될 것은 최소한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이 챕터의 마지막 장에 이런 문구가 적혀져있었습니다.
이 문구를 읽고 저는 곧바로 제가 가지고 있던 여유금을 제가 개발세계로 초대해준 그 두 친구에게 감사표시로 보냈습니다. 제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할 길이 돈밖에 없더라구요. 워낙 간지러운 말을 안하는 사이라 어려웠지만 장문의 감사인사까지 함께 보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한 녀석이 저를 추천해주었고, 그 덕에 저는 직장을 얻었습니다. 작년의 댓가를 바라지 않은 감사표시가, 시간이 지나 다음 해에 이렇게 되돌아왔습니다.
저도 믿기지 않습니다. 난 그저 작은 성의를 표했을 뿐인데, 이렇게 크게 되돌아오다니... 친구에게 너무 고마우면서 동시에 제가 친구에게 믿고 추천할만한 사람으로 보였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문득 이렇게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도 큰 도움을 받다보니, 더더욱 주위 사람들을 좋은 사람들로 채우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자 재능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학연 혈연 지연이란 단어가 보통 한국 사회에서의 병폐를 지적하는 문맥으로 사용되지만 사실 결국 따져보면 이것들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것들을 잘 활용만 한다면 나의 능력을 두 배 세 배 뻠삥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잘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던 동아리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얼마 전 교내 멋사 첫번째 홈커밍 네트워킹 행사에서도 귀중한 인연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앞으로는 정말 새로운 인연들을 많이 만날탠데, 기버의 스탠스로 제 인연들 잘 가꾸어나갈 생각입니다. 부디 저를 좋게 봐주시길!
개발 외의 인생
커리어 외적으로 저의 작년을 되돌아 봤을 때에도 저는 분명히 성장 중이긴 했던 것 같습니다. 성장은 했어요! 성장은 했는데... 다만 항상 성장은 선형적인 모양보다는 계단식 모양이라고 하는데 작년이 딱 계단의 평평한 지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슬프게도 모든 분야에서 시도하는 족족 입구컷을 당하기 일쑤였던 한 해였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워낙 본성대로 견고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럼에도 겉바속촉인 저는 속이 일정부분 문드러졌던 것 같습니다.
운동
그런 와중에도 운동만큼은 재작년처럼 꾸준히 열심히 했어요. 2022년은 약 이틀에 한 번 꼴로 운동을 했는데,(146+@/365) 23년에도 비슷한 빈도수로 운동했던 것 같네요.(166+@/365)
제 라이프 모토가 '체덕지'이기 때문에 직장 생활을 시작해도 어떻게든 운동은 같은 루틴을 유지할 계획입니다. 출근하기 전 수영 한시간 - 퇴근 후 회사 근처 헬스장이나 홈트 요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잘 지켜질지는 모르겠네요 ㅎ.
이제 운동 제대로 시작한지 3년차에 들어섰는데, 제가 20살일 때 위 사진을 보고 운동하기로 결심했던게 기억이 납니다. 물론 동기부여만 받고 규칙적으로는 못하다 군대 전역하고 나서야 제대로 시작해서 시작한진 얼마 안됐어요.
요건 제 비포 애프터입니다. 아직 멸치를 못벗어나서 올리기 부끄러웠지만 그냥 올려봤습니다. 오른쪽은 사실 작년 1월 1일 사진이에요. 24년 1월 1일에도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에서는 티가 안나더라구요... 하체랑 팔 위주로 성장한 나머지 가슴과 등은 두드러지는 성장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냥 사진 더 잘나온 작년 사진을 썼습니다 ㅎ
비포에 찍힌 제 몸이 충격적입니다. ㅋㅋ 레전드 레전드 이거 완전 볶음멸치아니야? 다행히 저 시절에 비하면 국물멸치까지는 자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옷입으면 볶음멸치 시절이랑 다를 바가 없어서, 옷입어도 티날 때까지 열심히 할 예정입니다💪
올해의 운동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잠깐 했던 로드 러닝 습관 들이기
- 물구나무, 턱플란체, L-sit 완성하기(물구나무 연습 중)
- 스쾃 100 찍기, 턱걸이 10개 넘기기
- 축구 정기모임 하나 들어가기
그 밖의 문화생활
지금부터는 사진으로 저의 1년을 요약합니다💨
올해의 산: 설악산
23년 초에 가족여행으로 설악산을 다녀왔습니다. 설경이 진짜 미쳐돌아서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겨울에 설악산 여행 강추드립니다
올해의 생일축하: 감사합니다.
23년엔 생일 축하도 크게 받았습니다. 마침 생일날이 멋사 신입부원들 OT날이라 이름도 잘 모르는 친구들에게 단체로 축하를 받아 어질어질했던 기억이 나네요. 덤으로 회장님께서 뉴진스 앨범을 선물을 해주셨습니다^^ 덕분에 뉴진스 빠돌이로 23년 내내 불렸는데 솔직히? 부정할 생각은 없네요 ㅋㅋ
올해의 콘서트: 정성하 단콘 emotions.
생일 축하 받기 전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기타리스트 정성하님의 단독 콘서트를 부모님과 같이 관람했습니다. 나중에 여자친구 생기면 꼭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네요. 같이 가줘잉~
올해의 경제활동: 타코 알바
올해 초 감사표시로 여윳돈 탕진하고 잔고를 채우기 위해 연남동에서 서빙 알바를 했었는데요, 4개월 정도 일했지만 외국인 손님들이 자주 찾아주셔서 좋은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ㅋㅋ
올해의 헤어스타일: 히피펌
여름방학 때 머리자르러 갔는데 정신차리고 나니까 히피펌이 돼있었어요. 이 사진은 펌 직후에 매드 사이언티스트같아 찍었던 사진입니다. 꽤 괜찮았지만 머리 자라면서 너무 빨리 그지존이 오는 관계로 다시 시도할 계획은 없습니다 ㅎ
올해의 게임: P의거짓
저는 원래 롤대남이었습니다(지금도 그렇지만). 롤만 죽어라 했는데, 올해 하반기에 한국 게임사에서 엘든링류의 게임을 출시한다길래 7만원의 거금을 투척해서 플레이해봤는데 너무 센세이셔널했던 기억이 납니다. 2시간 분량의 데모를 9시간 걸려 깨고 게임 속 분위기와 긴박감에 잠을 못이뤘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대충 피노키오 동화 원작을 각색한 잔혹 소울라이크 게임인데, 게임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서 잠깐 게임 개발자로 전직할까 헛생각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ㅋㅋㅋ(갔으면 큰일날 뻔..)
이거 하려고 없었던 게임패드도 사고 재밌게 즐겼습니다. 타격감이 장난 아니었어요. 10월 내내 개발 반 P의 거짓 반으로 잘 보냈던 것 같습니다. 이 게임 덕분에 그 유명한 엘든링도 사서 아껴먹는 중입니다 ㅎ
그건 그렇고, 작년 23년엔 제 염원 중 하나였던 롤 다이아 찍기를 성공했습니다. 다이아 찍고 나서 파죽지세로 마스터도 찍을 뻔 했지만 다이아 1을 터치한 이후 귀신들린 것 마냥 미끄러졌던 기억이 있네요. 올해가 아마 마지막 도전이 될 것 같은데 마스터는 찍고 접어보렵니다 ㅋ
올해의 소비: 키보드
리뷰도 남겼던 누피 헤일로75 키보드입니다. 슬슬 먼지가 앉기 시작했는데 함 청소를 대대적으로 진행해야겠군요...
올해의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소니 픽처스에서 제작한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입니다. 트릴로지(3부작)로 전편도 호평을 받았는데, 저는 이번 편이 너무 취향 저격이었습니다. 유려한 액션씬과 서사도 마음에 들었지만 제일 좋았던 건 수록곡들이었어요.
저는 지금도 폰 배경화면이 저 사진입니다. 운동할 때나 개발할 때 듣는 플레이리스트의 한 구역도 수록곡들이 차지하고 있네요 ㅎㅎ
올해의 음악: Pop Money - Another Dimension
그런 의미에서 올해의 음악은 스파이더맨 수록곡인 Pop money - Another Dimension입니다. 다른 좋은 곡들도 많은데, 유독 이 곡이 들을 때마다 몸이 붕 뜨는 기분을 줘서 좋아하는 곡이에요. 한 번 들어보기를 추천드립니다.
사진첩을 한 번 들쑤셔보니 상반기엔 뭐가 많았는데 하반기엔 건질만한 이벤트가 없었네요. 본격적으로 취준을 시작했기 때문에 아마도 더 어둡지 않았나 싶습니다.
올해 갑진년에도 사진을 많이 남겨놔야겠어요. 결국에 남는건 사진이다
← 띵언 인정합니다.
마무리하며...
정말 다사다난했던 2023년 계묘년이었습니다. 검은 토끼의 해라 해서 나의 해일 줄 알았지만 어림도 없었네요 ㅋ. 오히려 청룡의 해인 올해가 저의 해인가봅니다. 완전히 새로운 뉴 챕터 3를 맞이하는 저의 인생이 매우 기대되고 설렙니다. 으른으로 거듭나기 위한 저의 좌충우돌은 이곳에서 계속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커밍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