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개발 공부를 시작한 2년 전부터 소위 '한무무'라 일컫는 한성 893b Sports
키보드를 사용해왔습니다(아래 사진 위쪽 키보드).
무접점 키보드는 꽤나 만족스러웠습니다. 특유의 보글보글거리는 소리와 타건감이 마음에 들었어요. 무접점 축뿐만 아니라 블루투스 기능까지 지원해 14만원급 키보드 치고는 너무나 만족스러운 스펙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치명적인 불편함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겼어요.
블루투스 기능이 점점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한성은 사이언스(?)
사용한지 2년밖에(?) 안지났는데 1년 째부터 갑자기 블루투스 연결이 간헐적으로 끊겼으며, 이로 인해 원인을 알 수 없는 키 입력 씹힘이 너무나 잦게 발생했습니다(이틀에 한 번 꼴?).
그래서 블루투스 기능을 포기하고 유선 연결로 전환했어요. 블루투스 연결이 계속 잘 안돼서 구글링을 엄청 뒤져봤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https://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o_ablog&logNo=222531805764 이 블로그 글을 참고해 블루투스 기능을 초기화시켰을 땐 몇 분 잘 되는 것 같다가도 무한 도르마무였습니다 ㅠ)
또 유선 환경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그치만 애초에 블루투스용 키보드로 구매한만큼 키보드의 매력이 반토막나버린건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제 데스크 환경은 윈도우 + 맥
입니다. 윈도우는 주로 게임용, 맥은 개발용으로 구축해놨습니다. 맥북이 인텔 2020 맥북 프로 13인치(c타입 포트가 2개 밖에 없음..)이기 때문에 듀얼 모니터 구성을 위해서 c포트 하나는 QHD 모니터로 직결, 나머지 하나는 벨킨 usb 허브로 연결하느라 c포트가 남는게 없었습니다.
usb 허브에 남는 A타입 포트가 2개 있으나 여기에 키보드 유선 연결을 위해 케이블을 연결한다? 일단 책상이 케이블로 인해 너무 지저분해지고, 맥과 윈도우를 자주 넘나드는 상황에서 매번 케이블을 뺐다 꼈다하는게 개열받는 포인트였습니다. 보이시나요? 한성 키보드 usb 포트가 꽂기 어렵게 내장식으로 돼있어서 매번 뺐다꼈다하는게 너무 피곤했어요.
새 친구를 찾아 떠나보자!
그래서 이런 애로사항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키보드를 알아보고자 나섰습니다.
간략하게 저에게 필요한 키보드의 필수 스펙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맥과 윈도우 모두 지원
- 블루투스 2.4G 지원, 배터리 이슈 없어야 함
- 텐키리스 + 무접점말고 기계식 스위치 + 맥용 키캡 있으면 금상첨화
근데 이렇게 조건을 놓고보니 제가 원하는 최적의 키보드가 잘 없더라구요. 레오폴드나 바밀로 정도가 괜찮아보였고, 유튜브를 뒤져보다 다얼유 A87 Pro가 조건에 맞아 구매하려했으나 제가 원하는 축은 이미 품절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유무선 동시 지원에 맥/윈도우 동시 지원하는 키보드가 별로 없었어요. 커스텀 키보드에는 전문지식이 없어 기성품 키보드로 알아보려 해서 그런건지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같은 개발자 친구가 예전에 키보드 샀다고 자랑했던게 기억나서, 그거 뭐냐고 물어봤는데 누피란 키보드라 알려줬어요. 처음듣는 키보드였는데, 패션 커머스 '29cm'에 입점한 브랜드였고 생각보다 퀄리티가 좋아보이길래 찾아봤습니다. 그리고 사버렸네요?
누피 헤일로75 개봉기
포장 상태
우선 포장상태가 너무 고퀄이었습니다. 할인 다 먹여서 17 정도에 구매했는데, 요새 기성품 공장윤활 기계식 키보드 대충 13 언저리에 사는거 생각하면 20 언더에서 17까지는 투자해서 더 좋은 키보드 살만하다 생각했습니다.
포장 곳곳에 애니메 캐릭터가 대문짝만하게 박혀있는건 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포장상태부터 이미 가격대 이상의 신뢰도를 주고 있었습니다.
구성품
내용물도 훌륭했어요. 키보드 자체도 풀알루미늄 하우징이라 튼튼하고 좋았는데, 구성품으로 제공되는 맛보기 스위치들과 여분의 키캡은 정말 부랄을 탁 칠만한 포인트였습니다!
이게 기계식 키보드의 참맛인가?
놀라운 키감, 그리고 스페이스바!
에피타이저도 매우 만족스러웠는데, 메인디쉬(키감)는 그냥 압도적이었습니다.
이 키보드가 어떻게 보면 제 첫 기계식 키보드가 된 셈인데, 키를 누를 때 느껴지는 이 느낌은 정말 좋았습니다. 살짝 구분감이 있으면서 무겁지 않고, 적당한 클릭사운드로 타건에 재미를 더해주는 느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건 바로 스페이스바 키감이었습니다.
제조사의 말을 빌리자면 누피만의 댐버 시스템이 빈 소리를 잡아준다는데, 이거 ㄹㅇ입니다. 스페이스 바가 텅텅 울리거나 그러지 않아요. 어딜 눌러도 똑같은 키감과 재미를 줍니다.
그냥 온종일 스페이스바만 뚜들기고 싶습니다. 전문적인건 모르겠고 그냥 좋아요. 스테빌도 잘 잡혀있고, 이 뭐랄까, 단조로워지는 타건 속에 종종 찾아오는 달콤한 휴식? 오레오 오즈 속의 마시멜로같은 느낌?
스페이스바 키감이 다른 키랑 똑같았으면 별로 인상깊지 않았을탠데, 이 키 하나로 재미가 달라진다는게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갑자기 테스트용 스위치를 바꿔 껴보면 느낌이 달라질까? 해서 모든 스위치를 바꿔 껴보았습니다.
근데 키캡을 분리하니까 난 로즈 글레이셜 스위치로 샀는데 스페이스바만 나이트브리즈 스위치더라구요? 영상을 찾아보면 고른 축으로 스페이스바도 통일돼있던데 저는 스페이스바만 다른 축이었습니다.
근데 오히려 좋아. 같은 축으로 스페이스바를 바꿔보니까 무언가 재미가 없어지더라구요. 결국 한바퀴 돌아서 기존 공장 세팅으로 돌아왔습니다.
키보드에 돈 쓸만하구나~
묵직한 full 알루미늄 하우징
키감 외에도 느낀 장점은, 풀 알루미늄 하우징에 속이 꽉 차있어서 텅텅거림이나 사용 시 밀리는 현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부작용으로 지금 사용하고 있는 나무 팜레스트가 밀리는 현상이 생겨 누피용 팜레스트도 따로 주문했습니다 ㅋㅋㅋ
깔@롱한 LED
그리고 LED도 깔@쌈합니다. 솔직히 키보드에 LED는 사치라 생각했는데(pc방 청축키보드를 보며), 퀄리티 높은 LED를 보니까 너무 예쁩니다. 가끔씩 키보드를 훔쳐볼 때마다 반응하는 LED가 아주 예쁘더라구요.
빠릿한 블루투스
그리고 유무선도 잘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조금 써본 후기로는 이따금씩 무선 모드에서 웹 브라우저 상에서 타이핑할 때 딜레이가 살짝 생기긴 합니다만 치명적인 불편함으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유무선 이동에 불편함이 없어요
또 좋은 점은, 누피 키보드는 케이블을 꽂아놔도 무선 연결이 안끊긴다는 점!
기존 한무무의 경우 유선 연결을 하면 무선 연결 사용이 막혔습니다. 그래서 블루투스 모드를 사용하려면 케이블을 살짝 빼놨다가 유선을 사용하려 다시 키보드를 뒤집어서 연결하는 수고로움을 겪어야만 했는데, 이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누피 키보드는 유선 연결 후 무선 모드로 토글 시 무려 '충전이 되면서 블루투스 사용'이 됩니다. 이 말은 뭐다? LED 모드를 블루투스로 무한으로 즐길 수 있다~
또한 케이블 포트가 하우징 바깥에 노출돼있어서 키보드를 뒤집어서 않아도 된다~
그 외의 특징들
다만 배열이 시중의 텐키리스 배열이 아닌 75배열이라, 종종 오타가 발생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Enter 키와 Back 키 오른쪽에 위치한 function 키들이 은근히 자주 오타가 나서 코딩할 때 커서가 맨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 난리긴 합니다. 그래도 점점 익숙해져서 오타가 줄고 있으니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인 것 같습니다.
특이한 점은 F12와 Del키 사이에 가위모양 키가 있는데, 화면 캡쳐용 키가 있는게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특히 맥을 사용할 때 스크린 캡쳐 기능을 굉장히 자주 사용하는데, Cmd + Ctrl + Shift + 4 누르는게 익숙해졌지만 좀 불편했던 것을 키 하나로 해결할 수 있어 편하더라구요? 윈도우에도 똑같은 기능을 똑같은 키를 눌러서 사용할 수 있어 OS 사이의 차이점이 없어 편했습니다.
절전 기능도 있습니다. 뭔 기능인가 했는데 입력이 없으면 일정 시간 뒤에 LED나 연결이 자동으로 끊기는 절전 모드였어요. 이런 소소한 기능도 키보드를 오래 쓸 수 있게 하는 장점인 것 같습니다.
총평 : 돈 값 이상이다. 가성비다.
키보드를 구매할 당시엔 17만원이란 거금을 들여 구매하는만큼 망설여지기도 하고, 그만한 값어치를 할지 의문이기도 했습니다. 그치만 직접 사용해보고는 그런 의구심이 싹 사라졌습니다. 앞으로의 2~3년 개발 인생은 이 녀석에게 몸을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발자들이 키덕들이 많다는게 이해가 되게하는 키보드였습니다. 구매 추천드립니다!(내돈내산 리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