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찾기, 낙인, 낙원

December 8, 2023 (2y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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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에 유의하실 점: 이 글에는 《괴물》의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돼있습니다. 또한 제 사견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괴물을 보고 나오면서

영화 괴물 중 한 장면낙원

캄캄한 터널을 통과하자 펼쳐지는 둘만의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공간,

아무에게도 눈에띄지 않는 오로지 둘만의 폐객차 놀이터와

숨이 터질 때까지 뛸 수 있는 해방의 녹지

집단을 위해 개인의 사정은 쉬쉬 묻어버리는 특유의 일본 정서

더 다가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안으로 들어가려하지 않는 사람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매우 일본스럽다'는 것

3번 찝찝했다

영화 괴물 중 한 장면미나토 엄마의 시선

처음엔 애엄마의 시선으로 - 자식을 둘러싼 학교의 부조리에

영화 괴물 중 한 장면담임선생님의 시선

두번째엔 담임선생님의 시선으로 - 억울한 누명을 덮어쓰는 부조리에

영화 괴물 중 한 장면어른들의 세계 너머에

마지막엔 아이들의 시선에서 - 수용해주지 못하는 학교를 벗어나는 과정 속에 일그러지진 어른들을 보며

저 각 챕터의 피해자들의 가해자는 누구인가,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만들었나 나도 모르게 찾아다니고 있었다

누구 하나의 명백한 잘못이라기엔 모두가 일정 지분을 갖고 있더라...

내 손에 들린 인두

영화를 보다보니 어느순간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을 이미 알던 단어들로 정의하려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의 행동을 정의할 때마다 뭔가 그 단어로는 그 행동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느낌에 불편함을 느꼈다

통하는 구석이 있는 요리를 향한 미나토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동성애'로 정의내리는 것이 옳은 것인가? 감정에 서투른 어린 아이의 혼란일 수 있다면, 단어로 정의내려버리는 것이 되려 날카로운 빵틀로 자유로운 영혼을 정형화된 모습으로 주조해내는 폭력 아닐까... 나조차도 사회의 구성화된 일원으로서 시스템이 바라는 일반화 작업을 대신 수행해주고 있는지 모른다

괴물은 누구게

영화 괴물 중 한 장면괴물은 누구게

엄마랑 영화관에서 나와 저녁을 먹으며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다. '그렇네, 감독이 의도한건 괴물이 관객 자신일수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거네'.

확실한건 나는 이 감독이 의도한 모든 함정에 모두 빠졌다. 악인으로 내정했던 교장과 미나토의 합주(?),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대상을 향한 낙인, 우리나라 네티즌들의 마녀사냥을 혐오하지만 영화 내내 범인찾기하고 있는 내 자신. 나도 어쩔 수 없이 같은 인간이라는 걸 증명당해 매우 무기력하다.

미나토와 요리는 정말 죽은걸까? 죽진 않더라도 이런 사회의 빵틀 찍어내기 공격 앞에서 해방된 상황을 보여준걸까? 전자라면 이 세상에 그런 낙원은 없다는 것을 뜻할 것이고, 후자라면 관객에게 던지는 감독의 희망의 메세지일 것 같다.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