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에 유의하실 점: 이 글에는 《괴물》의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돼있습니다. 또한 제 사견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괴물을 보고 나오면서
캄캄한 터널을 통과하자 펼쳐지는 둘만의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공간,
아무에게도 눈에띄지 않는 오로지 둘만의 폐객차 놀이터와
숨이 터질 때까지 뛸 수 있는 해방의 녹지
집단을 위해 개인의 사정은 쉬쉬 묻어버리는 특유의 일본 정서
더 다가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안으로 들어가려하지 않는 사람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매우 일본스럽다'는 것
3번 찝찝했다
처음엔 애엄마의 시선으로 - 자식을 둘러싼 학교의 부조리에
두번째엔 담임선생님의 시선으로 - 억울한 누명을 덮어쓰는 부조리에
마지막엔 아이들의 시선에서 - 수용해주지 못하는 학교를 벗어나는 과정 속에 일그러지진 어른들을 보며
저 각 챕터의 피해자들의 가해자는 누구인가,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만들었나 나도 모르게 찾아다니고 있었다
누구 하나의 명백한 잘못이라기엔 모두가 일정 지분을 갖고 있더라...
내 손에 들린 인두
영화를 보다보니 어느순간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을 이미 알던 단어들로 정의하려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의 행동을 정의할 때마다 뭔가 그 단어로는 그 행동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느낌에 불편함을 느꼈다
통하는 구석이 있는 요리를 향한 미나토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동성애'로 정의내리는 것이 옳은 것인가? 감정에 서투른 어린 아이의 혼란일 수 있다면, 단어로 정의내려버리는 것이 되려 날카로운 빵틀로 자유로운 영혼을 정형화된 모습으로 주조해내는 폭력 아닐까... 나조차도 사회의 구성화된 일원으로서 시스템이 바라는 일반화 작업을 대신 수행해주고 있는지 모른다
괴물은 누구게
엄마랑 영화관에서 나와 저녁을 먹으며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다. '그렇네, 감독이 의도한건 괴물이 관객 자신일수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거네'.
확실한건 나는 이 감독이 의도한 모든 함정에 모두 빠졌다. 악인으로 내정했던 교장과 미나토의 합주(?),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대상을 향한 낙인, 우리나라 네티즌들의 마녀사냥을 혐오하지만 영화 내내 범인찾기하고 있는 내 자신. 나도 어쩔 수 없이 같은 인간이라는 걸 증명당해 매우 무기력하다.
미나토와 요리는 정말 죽은걸까? 죽진 않더라도 이런 사회의 빵틀 찍어내기 공격 앞에서 해방된 상황을 보여준걸까? 전자라면 이 세상에 그런 낙원은 없다는 것을 뜻할 것이고, 후자라면 관객에게 던지는 감독의 희망의 메세지일 것 같다.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