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가장 유난스러운 아리랑, 환호 뒤에 남은 질문들
며칠 전 내 생일에 BTS의 신보 《아리랑》과 펄어비스의 《붉은사막》이 출시됐다. 우연히 두 작품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공통점이 있던만큼 이들을 향한 대중의 기대감은 과할 정도로 부풀어있었다. 나도 당연히 그 중 하나였고, 두 분야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기에 기대를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오히려 우리들을 혼란에 빠뜨리기까지 했다. '앨범 이름이 아리랑인 이유가 뭐지?', '제작사의 고집으로도 포장할 수 없는 악의적인 조작감과 내러티브는 과연 어떻게 출시가 가능했던거지?' 덕분에 주말동안 이 둘을 둘러싼 설왕설래와 강건너 불구경하느라 시간 가는줄 몰랐다.
웃기게도 이 두 사건에는 빌어먹을 'K-컨텐츠'의 고질병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 기술적인 완성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함. 만듦새만 보면 역작에 가까움
- 정작 까보면 컨텐츠의 책임자는 없음. 모두가 '구성원'으로서 '공동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협력한 콜라주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히 신물이 난다. 내 기대를 만족시켜주지 못한 BTS와 펄어비스가 문제가 아니다. 이 빌어먹을 패턴이 왜 자꾸 반복되냐는 것이다. K 접두사를 붙이지 못해 안달난 공영방송의 뉴스들은 국민들을 방패삼아 폐가 터질때까지 바람잡아놓고 결국 견디지 못해 터지면 그 모습을 두고 팔짱을 끼며 냉철한 척 분석한다. 아무래도 방송사 이 놈들이 제일 문제같다.
그 누구도 강요한 적 없지만 영화를 제외한 K-콘텐츠들은 하나같이 다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결말을 맞이한다. 자성의 시간은 가지지만 그 때뿐이다.
진짜와 가짜
나는 이런 현상을 우리 사회의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아직도 대한민국 사회는 미성숙하다. 여전히 개인의 개성은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다. 여전히 실재하는지도 의문인 빌어먹을 공동체의 목표를 위해 희생당하기를 학창시절 내내 세뇌당한다.
누워서 침뱉기지만 내 부모님의 모습이 부끄러운 거울이다. 죽기 직전까지 이들을 사랑할 것이지만, 이들을 객관적으로 볼 때면 NPC같은 면이 느껴질 때가 많다. 기호는 있지만 정체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완벽무결한 한국의 부모님인 것이다. 이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목이 졸리는 답답함이 쏟아진다.
이젠 상대방의 행위들을 경멸해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라는 개인을 새하얀 눈더미속에 묻어 흔적을 없애려는 사회 시스템에 조금이라도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연 진짜와 가짜는 뭘로 구분되는 것일까?
혹자는 '너만의 것을 하는 것이 이 시대에 진정성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얘기한다. 좋다. '나만의 것'을 하고자 웹개발 때려치고 게임개발을 시작했다. 그리고 1월부터 3월 2개월동안 정말 과장없이 매일을 '나만의 것'이 뭘지 생각했다. 오만하게 두 달 고민해서 나올 답이 아니란 것쯤은 각오한지 오래다.